[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김밥 두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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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김밥 두 줄

    • 입력 2020.03.31 08:49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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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밥 두 줄 

                                         이 은 봉

    광주역 근처 ‘김밥천국’에서
    급하게 김밥 두 줄 산다
    검정 비닐봉지에 담겨 있는 슬픔 두 줄
    왼손에 들고 역을 향해 뛴다
    오른손에는 오래된 검정 가죽가방
    덜레덜레 들려 있다
    막 출발하는 KTX 역방향에
    철푸덱이 주저앉는다
    검정 비닐봉지를 펼쳐
    설움 두 줄 먹어치운다
    자동판매기에서 뽑혀 나온 생수병이
    주둥이를 향해 거꾸로 쑤셔 박힌다
    졸음 쏟아져 내리는데
    이 고마움 누구에게 표해야 하나
    오늘도 눈물 두 줄의 힘이
    나를 서울로 밀고 간다
    서울에는 무엇이 있나
    아내와 자식들이 있다 사랑이
    달리는 고속열차 역방향에 쪼그리고 앉아
    깜박 잠든 채 꿈꾼다 천국을.

    *이은봉:1984년『창작과비평』등단.*광주대명예교수*현.대전문학관관장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우리들의 영원한 생명의 근원인 밥! 밥은 무엇이기에 이토록 울컥, 가슴 솟구치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얼마나 많은 끼니를 길 위에서 때웠던가! 때로는 빵 한 덩이를 들고, 또 때로는 김밥 한 줄을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시간들!

    몇 년 전 지하철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가 사고로 우리들 곁을 떠난 19세 청년, 그의 공기구 가방에서 발견된 컵라면 하나와 나무젓가락 하나, 점심으로 먹으려던 그 하나를 끝내 먹지도 못하고 그는 우리들 가슴에 큰 슬픔을 안겨 주고 떠났다. 밥은 이렇게 우리들의 행복과 불행으로 점철되는 서러움의 알레고리다. 

    이 시의 화자는 직장관계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을 만나러 귀로에 오르는가 보다. 그런데 김밥 두 줄을 사 들고 기차를 놓칠까봐 허겁지겁 뛴다. 그러나 기차를 놓쳤는가 보다. “막 출발하는 KTX 역방향에/ 철푸덱이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검정 비닐봉지를 펼쳐/ 설움 두 줄을 먹어치운다” 정말로 “설움의 밥”이다. 그런 밥을 벌기 위해 가족을 떠나 멀리서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가장의 설움이다. 가장의 밥이 겨우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김밥 두 줄이란다. 그래도 먹어야만 하는 인간본연의 존재가 서럽게 가슴을 울린다. 자취생활을 하던 고교 시절, 고추장과 찬밥 한 덩이를 앞에 놓고 하염없이 울었던 때가 생각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제대로 식사도 못한 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뛰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인들과 간호사들이 그들이다. 또 한 켠에서는 밥그릇과 밥숟가락을 하나라도 더 챙기기 위해 이전투구 하는 이들도 있다.  다 국민을 위한 것이란다. 그러므로 가장 귀하고 값진 밥은 과연 어떤 밥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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