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문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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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문턱

    • 입력 2020.03.17 00:00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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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턱

                                                                                                    송 병 숙

    하루 대여섯 번씩 신작로를 오르내리는 버스를 눈으로 좇다가 산그늘이 마당 끝 목련나무에 다가와 무등을 태우는 걸 보고서야 엉거주춤 일어서시던 어머니. 공휴일이면 방문을 삐쭉 열기도 하고 말기도 하는 자식들을 기다리느라 지는 해를 바지랑대에 달아 놓고 풀 먹인 무명 빨래처럼 하루를 잡아 늘리기도 하던 문턱. 지금은 헐린 집터 컨테이너 댓돌에 앉아 큰 길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워 무는 퇴직한 오라버니 눈빛이 생전의 아버지 같기도 하고 어머니 같기도 하고

     

     *송병숙:1982년『현대문학』등단.*전,강원여성문학인회회장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문턱’의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지위의 높고 낮음을 뜻하기도 하고, 안과 바깥의 경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때로는 터부taboo시 하는 흉凶의 의미를 함축하기도 한다.

    예전 우리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문턱, 혹은 문지방에 걸터앉는 것을 경계했다. 실제로 고,김규동 시인은 “아이가 고3이 되고 보니 문턱 하나 넘는 것도 매우 조심스럽더라”고 하셨던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는 잔잔하면서도 애틋한 ‘사랑과 기다림’의 파동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상징화 한 시다. 공휴일이면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심정과 눈길이 우리들 가슴을 파고든다.

    “지는 해를 바지랑대에 달아 놓고 풀 먹인 무명 빨래처럼 하루를 늘이기도 하던 문턱”은 긴 여운과 함께 기다림의 목마름이 간절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 ‘문턱’에 지금은 어머니가 없다. 헐린 집터 컨테이너 댓돌에 앉아 큰 길을 바라보는 퇴직한 오빠가 담배를 태워 물고 그 옛날 어머니처럼, 혹은 아버지처럼, 아득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영상으로 겹친다. 가슴이 찡-해 오는 이미지다. 아련하고도 쓸쓸한 심상이 우리의 시선을 먼 허공에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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