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보리쌀 선물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보리쌀 선물

    • 입력 2020.03.04 09:23
    • 기자명 칼럼니스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리쌀 선물

                                      김 금 분

     

    죽마고우 재복이가

    군자리에서 농사지은 햇보리를

    서너 됫박 실하게 보내왔다

     

    너무 적어서, 아유- 너무 적어서

    주면서도 미안해 하는 친구의 얼굴에

    한여름 땡볕을 이겨낸

    보리밭 이랑이 어룬거린다

     

    검정 비닐 봉투 안으로

    손을 넣어 만져보니

    방앗간에서 금방 찧은 것이라

    뽀얀 분가루가 따뜻하게 묻어난다

     

    나면서부터 고향에 눌러앉아

    농사짓고 소 키우더니만

    이젠 단단한 알부자 되어서

    말소리조차 느릿느릿 급할 게 없는

    보리밥처럼 푹 무른 재복이,

     

    별미로 맛보라고 조금 줬다는데

    구수한 마음이 되레 별미라

    큰 솥에 넉넉히 물을 잡아

    재복이처럼 은근한 불에 올려놓고

    그리운 부뚜막 그 옛날 밥을 짓고 있다네

     

    *김금분:1990월간문학등단.*,김유정기업사업회이사장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보리쌀 선물! 참으로 따뜻한 서정으로 출렁거린다. 보리쌀 서너 되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이 보리쌀에 묻어 있는 뽀얀 분가루만큼이나 정겹다. 재복이란 친구는 초등학교 동창인 것 같다. 그 동창이 고향에 눌러 앉아 농사를 짓는다. 그 친구가 보리쌀을 선물로 준 것이다. 주면서도 계면적어 하는 모습이 환하게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적어서, 아유, 적어서”를 되뇌이는 마음, 그 마음속에는 다소 부끄러움이 숨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이런 태도가 그 사람이 지닌 순수성이 아니겠는가! 순수성을 잃은 사람은 인간냄새가 안 난다. 닳고 닳아 진정성을 잃고 사는 오늘날 세태 속 우리들의 삶! 거짓이 거짓말을 포장하고 다수의 상대를 매장시키려는 세상이다. 자연의 순리를 배우고 자연의 질서처럼 푹 무른 재복이 같은 순정이 그립다. 가난하게 살다 가신 전 세대,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들의 배고픔과 한의 고개를 넘겨야 했던 곡식, 오늘날엔 재복이의 은근한 성정처럼 깊은 여운과 별미 같은 인간미를 일깨워 주는 값진 보리쌀의 승화다. 보리쌀 같이, 재복이 같이 이런 진정성과 순수성을 지닌 사람의 마음이 그리워지는 세상이다.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