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연예쉼터]봉준호 감독의 유쾌한 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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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연예쉼터]봉준호 감독의 유쾌한 화법

    • 입력 2020.02.17 10:46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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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제92회 아카데미 4관왕의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16일 오후 귀국했다. 공항 입국장에 선 봉 감독은 “이제 조용히 본업인 창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기쁜 마음입니다”라면서 “사실 박수를 쳐주셨는데 감사하고, 오히려 코로나 바이러스를 훌륭하게 극복하고 있는 국민분들께 제가 박수를 쳐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라고 입국 현장에 모인 수십 명의 취재진에게 말했다.

    나는 2017년 6월, 영화 ‘옥자’ 개봉을 즈음해 봉 감독과 인터뷰를 했는데, 특유의 화법에 감탄한 적이 있다.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 말까지 이 정도로 잘하는 감독은 그리 흔치 않다. 이처럼 봉 감독 특유의 겸손하고 유쾌하면서 감동적인 화법은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부터 최근의 아카데미상 시상식까지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같은 스포츠에서 세계를 제패한 것과 아카데미 4관왕은 좀 다르다. 전자는 속이 시원할 정도로 기분이 좋지만, 후자는 기분만 좋은 게 아니다. 우리(나라) 스스로가 좀 멋있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카데미가 한국(봉준호)의 창의성을 인정해준 것이다. 여기에 봉 감독이 인터뷰나 수상 스피치에서 멋있고 품위 있는 말까지 쏟아내니 ‘부심’이 더 강해진다.

     

    봉준호 감독의 화법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을 받는 스타일이다. 받을 것만 받아가는 사람은 다음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봉 감독은 외교관이나 무역업, 통상전문가를 해도 아주 잘 할 정도의 설득력과 인상을 주는 화법의 대가다.

    그는 무엇을 줄까? 주로 칭찬을 주는데, 어떤 칭찬을 해야 할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세계 영화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읽고 있기 때문이다. 그 칭찬도 자신의 개인적인 독창성을 세계 문법에 던진 사람답게 개성적이다.

    ‘기생충’에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 때에도 봉 감독은 어릴때 자신에게 큰 영감을 준 스릴러의 거장인 앙리 조르쥬 끌루죠와 클로드 샤브롤에게 감사드린다고 언급해주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경쟁작을 내놓은 두 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해외에서 한국영화를 인정해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추겨세우는 걸 잊지 않았다. “내가 영화학도 시절 당신(스콜세지)의 영화 보고 공부했어요”라고 하는 데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 다음에는 무엇을 얻을까? 최고의 상(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작품상을 포함한 아카데미상 4관왕)을 얻었다. 최고의 상이 그저 온 게 아니다. 영화를 잘 만드는 것은 기본이다. 그는 빈부격차와 계급갈등을 자신만의 독창적 관점에서 전개시켜나갔다. 이를 아카데미가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 감독은 이렇게 잘 만들어도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며 로컬 영화제(?)로 여겨진 아카데미상을 못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여기에 말하는 실력이 필요하다.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는 스피치를 할 때마다 염두에 둔 것이 있는데, 바로 가려운 점을 긁어주는 것이다. 지금 이 곳 영화에서 뭐가 필요한 건지를 자신만의 언어로 전했다. 그래서 봉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은 한국영화의 우수성에 대한 인정일 뿐만 아니라, 맥락의 승리이자, 레토릭의 승리이며 논리의 성공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난해 제91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비영어권 영화 ‘로마’가 감독상을 받고 최고영예인 작품상은 ‘그린 북’에게 돌아간 것은 ‘로마’가 덜 우수해서가 아니라 비영어권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이번에도 아카데미가 그런 ‘배타성’에 빠질 수 있었다. 봉준호의 “자막의 1인치 장벽” “아카데미는 로컬”이라는 정교하게 준비된 코멘트는 맥락에 있어 그런 상황의 연장선의 의미를 갖는다.

    상을 달라고 떼를 쓰는 게 아니라 유머와 레토릭으로 전해, 아카데미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자본주의 첨단 국가인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도 흥행과 이슈에 목말라있다. 남녀주연상을 모두 흑인배우(덴젤 워싱턴과 할리 베리)에게 준 2003년이 아카데미의 역사를 새로 썼듯이, 올해도 새로운 이슈를 찾고 있을 것이다. 봉 감독이 쏜 말의 탄착점은 정확이 그 곳에 형성됐다.

    CJ그룹이 아무리 열심히 홍보 마케팅을 벌이고, 수많은 인터뷰 자리 등 판을 깔아줘도 말을 잘 못하면 좋은 기회를 날려버릴 수 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말은 항상 이슈화돼 관심을 안가질 수 없게 했다.

    봉준호 감독은 현장에서도 사람들에게 칭찬을 하며 최대치를 뽑아내는 부드러운 스타일이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로 이미 톱스타가 된 송강호가 ‘플란다스의 개’의 흥행 참패 후 봉 감독의 두번째 장편영화 ‘살인의 추억’(2003년) 캐스팅 제의를 흔쾌히 수락한 것도, 자신이 과거 ‘모텔 선인장’(1997년) 오디션에서 떨어진 후에 이 영화 조감독이었던 봉 감독에게 받은 진정성 있는 음성녹음에 감동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또 봉준호 감독은 심각한 것을 유머로 날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을 비교 극과 극 체험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인인 코리아헤럴드 케빈 기자도 “유머감각(센스 오브 휴머)을 잃지 않았던 봉준호가 할리우드와 잘 어울렸다”고 말했다.  ‘카이에 뒤 시네마’ 기자가 말했듯이,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두 가지를 합치는 능력이 있는 봉 감독이 또 어떤 영화의 화법, 또 어떤 스피치의 화법을 내놓을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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