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의 세상읽기] 낙태,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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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담의 세상읽기] 낙태, 정답은 없다

    • 입력 2020.02.14 08:00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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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성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헌법학회 고문
    김학성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헌법학회 고문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형법의 '자기 낙태죄'와 '동의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1953년 형법에 낙태죄 관련 규정이 들어간 이후 66년 만에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건이다. 

    헌재 결정에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투쟁해온 여성들은 환호했을지 모르지만, 낙태죄 폐지에 대해 모든 사람이 찬성한 것은 아니다. 낙태는 정답을 알기 어려운 문제로,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고 져도 진 것이 아니다. 

    이번 결정으로 낙태죄가 사실상 사라지게 됐지만, 낙태 논쟁은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헌재가 명시한 2020년 말까지 국회는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입법과정에서 종교계와 여성계 간 격렬한 대립이 예상된다. 그동안의 싸움이 낙태의 '허용 여부'였다면 이제부터는 낙태 시기와 사유 등의 '낙태의 한계'에 관한 낙태논쟁 '제2 라운드'가 시작될 전망이다.
     

    낙태죄 반대를 외치던 시위자들이 지난해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 소식을 듣고 낙태죄 위헌 손팻말을 날려 보내는 상징 의식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낙태죄 반대를 외치던 시위자들이 지난해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 소식을 듣고 낙태죄 위헌 손팻말을 날려 보내는 상징 의식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낙태란 태아를 자연분만 시기에 앞서서 인위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하거나 모체 안에서 살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현재 형법은 낙태를 전면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은 중대한 유전적 질환이 있거나, 강간에 의한 임신, 혼인할 수 없는 혈족 간에 임신 등 의학적·우생학적·윤리적 적응 사유 등이 있는 경우에 형법의 낙태죄 적용을 배제함으로써 낙태를 일부 허용한다.

    헌법재판소는 태아는 일반적으로 임신 22주 내외부터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기에 임신 22주 내외에서의 낙태는 허용돼야 하며(3인의 위헌 의견은 임신 14주), 구체적 기간은 입법자의 입법 형성에 맡기고 있다. 

     

    낙태죄폐지반대국민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 반대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낙태죄폐지반대국민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 반대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반면 반대 의견은 태아는 모체와 독립된 생명체로서 태아와 출생한 사람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된 때부터 출생까지의 태아는 기간의 구분 없이 내재적 인간의 가치를 지닌 생성 중인 생명이므로, 태아의 생명을 적극적으로 소멸시킬 자유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생명 침해 행위라는 주장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

    생각건데 지금의 상황은 낙태죄의 사문화(死文化)로 인해 태아의 생명은 보호되지 않으면서 음성적 낙태가 이루어지고, 불법적 수술로 인한 비싼 수술비가 지급되며 수술 전후로 적절한 의료서비스나 돌봄이 전혀 없어 여성의 정신 및 육체를 도리어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동시에 학업이나 직장생활에 대한 지장, 경제적 부담, 자녀양육의 어려움, 미성년자의 혼전 임신 등에 대한 대비책이 전무한 상황이다. 그러면서 자신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이 병원에서 낙태한 후 자신을 만나지 않으려 할 때 남성이 자기 낙태죄로 고소하겠다는 위협을 하는 경우, 배우자가 이혼소송 과정에서 재산분할이나 위자료청구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낙태에 대해 고소를 하는 경우 등과 같은 남용사례도 적지 않다.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낙태 허용 여부에 관한 논쟁은 생명에 대한 근원적 문제와 관련이 있고, 윤리적 양심이나 종교적 신앙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그 자체 신념으로 존중받아야 하기에 섣불리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정답이 없는 문제'다. 

    법은 '정의와 법적 안정성'의 서로 충돌하는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정의는 사람을 죽인 경우 하늘이 무너져도 살인자의 처벌을 요구하지만, 법적 안정성은 일정한 기간이 지나도록 처벌되지 않았다면 처벌을 면제해 줄 것을 요청한다. 양자의 적절한 경계설정이 법의 과제다.

    인간의 역사는 물론 우리의 삶도 구체적 경계 설정과 관련해 늘 '이상과 현실'이 대립된다. 판결문의 다수의견은 통상 현실에 중점을 두는 반면 소수의견은 이상을 강조한다. 이번 결정도 다수의견이 여성이 겪는 고통해결에 중점을 두었다면 반대의견은 태아의 생명을 우선하고 있다. 

    헌재가 낙태를 불처벌로 결정했다고 해서 헌재가 낙태를 권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회경제적 이유로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이 한 명도 없도록, 모성보호와 여성의 건강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지원체계의 확립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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