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상의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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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상의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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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거머쥐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 장편 영화상에 이어 각본상, 작품상 그리고 감독에 이르기까지 4개 부분을 석권한 것이다. 이로써 기생충은 올해 아카데미상 최다 수상작이 됐다. 한국 영화계는 어느 때보다도 경사 분위기에 한껏 고조된 듯싶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아카데미상은 오스카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스카란 영화제에서 사용되는 인체 모양의 트로피를 말하는데, 그 모양이 매우 단순하고 남성적이다. 아카데미협회에서 일하는 관리자가 트로피를 보고 자신의 삼촌 오스카와 닮았다고 말한 데서 붙여진 닉네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외에도 몇 가지 기원설이 있는데, 공통점은 모두가 우연히 붙인 명칭이라는 점이다. 

사실 권위란 우연과 우연의 연장선에서 누군가 그 기회를 선점하고 혹은 독점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창출된 효과인 경우가 종종 있다. 물질적으로 환산하면 그리 고가의 제품이 아닐, 오스카 트로피는 수상자에겐 그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가보로서 전해질 만한 보물일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수상소식만으로도 국가적 경사로 그 의미를 확대재생산하고 있지 아니한가!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런데 먼저 이 글은 아카데미상 수상 사실을 폄훼하려는 취지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야 할 것 같다. 필자 역시 수상 소식에 놀랐고 자기 일인 양 좋아했다. 그리고 약간 들뜬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다만, '기생충'에서도 오스카 트로피와 비슷한 권위 혹은 권능을 상징하는 모티브가 사용됐기 때문에 그 해석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 초반, 극 중 아들 기우(최우식 분)에게 친구가 전해준 수석(壽石)이 있다. 대학입시에 번번이 실패한 기우를 위해 친구가 준 선물이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수석은 일이 잘 풀리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기우가 귀물(貴物)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효험이 있다는 일종의 부적을 기우는 덥석 받아들인다. 그 덕분인지 어려운 가정 살림에 고액의 과외아르바이트 자리가 들어오고, 연줄을 타고 가족 모두 일자리를 보장받게 된다. 이들 가족에게 우연히 굴러들어온 수석은 충분히 그 효험이 증명된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영화 '기생충' 스틸컷

극의 후반부, 박 사장의 아들 다송이가 정신적 충격을 받은 후 생긴 트라우마를 극복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파티가 열린다. 다송이 엄마가 급하게 연락을 취해 모여든 사람들의 면면은 여유가 있고 부유해 보인다. 급조된 파티 같지 않게 이들은 각자 가져온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2층에서 쳐다보고 있던 기우는 몹시도 부러워한다. 

기우는 '자연스러워 보인다'라는 말을 연발하며 경탄해 마지 않는다. 이제 그는 자신도 그들과 같은 그룹에 속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는다. 물론 그 욕망을 실현시킬 매개자는 자신이 과외를 하고 있던 박 사장의 딸 다혜다. 그리고 이런 꿈을 꿀 수 있게 된 것은 다 친구가 전해준 수석 덕분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런데 조급해진 기우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려 한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영화 '기생충' 스틸컷

그렇게 비극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기우는 홍수가 난 반지하 방에서 유일하게 수석을 들고 나왔다. 그 부적의 권위가 있어야 만이 신분 상승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석은 뜻하지 않게 뒤틀린 용도로 전유된다. 왜곡된 시스템 자체도, 그 메커니즘에 올라탄 기득권도 아닌, 기우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지하 인간들을 찍어 누르고 처단하기 위해 수석을 사용하려 든다.

그러나 의도와는 달리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수석에 도리어 머리를 가격당해 기우는 쓰러진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기우가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해있을 때, 그를 취조하던 경찰도 그 옆에 서 있는 의사도 모두 권위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몸을 조금 회복하고 나서 법정의 판사 앞에 서서도 그는 히죽거린다. 물론 머리를 다쳐 인지능력이 떨어진 상태라는 설정이지만, 함축적 의미는 모든 사회적 권위가 무위로 돌아간 것을 은유한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영화 '기생충' 스틸컷

반면 결말부 상상장면에서는 성공한 기우가 박 사장의 집을 사고 지하에 갇힌 아버지를 구하기에 앞서 수석을 계곡에 가져다 놓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물속의 수석은 더 이상 수석이 아니다. 그냥 밋밋한 돌에 불과하다. 두드러질 것도 없이 원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놓여 있다.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상상 속이긴 하지만, 이제 성공한 기우에게 권위는 부로 대체됐기 때문에 더 이상 수석을 부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없다.

실체를 가진 물질 자체의 속성에서 보자면 돈 역시 그 실체가 모호한 일종의 권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몇십조의 자산을 가진 세계적인 부호들도 그들이 가진 돈을 다 금고에 넣어둘 수는 없다. 사실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하등의 이유도 없어 보인다. 은행시스템에 기록된 디지털코드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그와 같은 허상의 코드에 불과한 자본의 힘으로,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부리고 권력을 행사하려 든다. 또는 거기에 기생해 비슷한 계급 계층의 이들을 밟고 일어서려 드는 일이 일상이 돼 버린 이들도 넘쳐난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 바로 '기생충'이 자본주의체제를 고발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즉, 물질적 속성도 부재한 돈이라는 허상 때문에 모두가 비극에 빠져버린 우화로서 우리네 삶을 리얼하게 그렸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사진=연합뉴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사진=연합뉴스)

글의 서두에서 아카데미상의 트로피인 오스카에 대해서 언급했다.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영어권 영화를 주 대상으로 한 아카데미 시상식이 여타의 영화제에 비해 더 권위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자본의 힘이다. 자본주의 종주국으로서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미국의 힘은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자본이라는 권위로 군사, 정치, 경제, 문화의 주도권을 잡고 있기에 아카데미상 역시 권위가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만약 미국이 약소국이라면 그런 미국에서 벌어진 영화제에서 상을 탔다는 사실만으로 온 매체를 도배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겠다 싶다. 

블랙 코미디 장르를 빌려와 자본주의 허상을 리얼하게 표현한 한국영화가 배타적이기 그지없던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의 영화제 아카데미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가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역설적이게도 문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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