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the Jewel] 스위스는 시계보다 먼저 보석이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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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Jewel] 스위스는 시계보다 먼저 보석이 유명했다
  • 자유기고가
  • 승인 2020.02.0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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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스위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계 강국이다. 16세기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 시계 산업을 이끄는 만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계 브랜드를 배출했다.

파텍필립, 바쉐론콘스탄틴, 오데마피게 등 하이엔드 브랜드에서부터 예거 르쿨트르, 제니스, 롤렉스, 오메가, IWC, 태그호이어, 스와치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부분의 시계 브랜드가 스위스 브랜드다.

스위스 내 제약화학, 기계 전자금속에 이어 3대 수출산업에 해당하는 시계 산업. 그만큼 시계는 스위스의 자존심이자 상징이다. 하지만, 사실 스위스엔 시계보다 먼저 보석이 유명했다.

 

 

장 칼뱅 초상화
장 칼뱅 초상화

◇'종교개혁' 주창한 장 칼뱅 영향으로 시계 산업 발달
16세기 장 칼뱅이 스위스로 오기 전, 스위스에는 보석 등 치장할 수 있는 귀금속류들이 유행했다. 하지만, 종교개혁을 주창한 프랑스 신학자 장 칼뱅이 스위스 제네바로 피신하면서부터 스위스엔 보석보다 시계가 발달하기 시작한다.

장 칼뱅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전통에 반대 입장을 피력한 이후 지속해서 신변의 위협을 느꼈고, 이에 스위스로 도피한다. 그가 떠난 프랑스에선 정부의 종교 탄압이 더욱 심해졌다. 결국 그를 지지하던 프랑스 개신교 신자 또는 프랑스 칼뱅주의자(위그노) 40만여 명은 스위스를 포함해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등으로 거처를 옮긴다.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보석으로 치장하거나 사치 부리는 것을 싫어한 장 칼뱅은 청빈하며 시간을 잘 지키는 생활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위스 내 유행하던 보석 대신 시계 산업을 발달시킨다. 당시 시계는 시간 확인을 위한 필수적인 도구였다.

칼뱅이 스위스 시계 산업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시기는 그가 1541년 제네바 시장으로 당선된 이후부터다. 그는 시장으로 당선되자 스위스 내 귀금속류의 착용을 금지했고, 자신을 지지한 위그노에게 시계 제작을 지시했다.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위그노 중 보석 세공 등 정밀 기술을 가진 기술자들이 많이 있었고, 이들은 샤프하우젠과 쥐라 지역을 중심으로 단숨에 스위스 시계 산업을 발전시킨다. 스위스가 전 세계적으로 시계 기술로 유명한 나라가 되자 많은 시계 기술자들이 스위스 제네바에 몰려들었다. 이후 스위스인들은 위그노가 가지고 있는 시계 제작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스위스 시계 산업은 지속해서 성장한다.

1780년 당시엔 제네바 수공업조합에 등록된 시계 장인이 5만여 명이었다. 이후 1845년부터는 시계 산업이 기계화되면서 스위스 내 시계 생산량은 많이 늘어났고, 본격적으로 스위스인들은 '메이드 인 스위스' 시계를 수출하기 시작하며 시계 산업의 몸집을 더욱 키우기 시작했다.

 

/김지현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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